Q44. J35. 사려思慮

Quote of the day

기쁨과 즐거움이 지나치면 신이 흩어져서 간직되지 못한다.
을 내어 불이 심하게 타오르면 안화함을 태워 스스로를 상하게 된다.
근심하면 기가 가라앉는다… 기가 막혀 흐르지 못한다.
생각을 하면 기가 뭉친다. 뜻을 간직하면서 변화에 대처하는 것을 사思라 하고, 사에 근거하여 멀리 내다보는 것을 려慮라 한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으면 신이 상하고 정이 멎지 않고 흘러내린다.
슬퍼하면 기가 소모된다… 생명을 잃게 된다.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을 상한다.

동안이란 얼굴에 담아야 할 시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성숙을 거부하는 것. 미성숙하다는 건 철학적으로 볼 때 세계 안에서 나의 역할과 책임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 가을이 왔는데도 여름을 고집하는 것과 같다.
권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열에 대한 집착이 곧 권력이다.
왜 대중들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권력의 시선에 가두고자 하는 것일까?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핵심을 간파하는 안목이다.
현대의학에서 병을 찾는다는 건 해부학적 병인을 찾는 것이다.
눈빛만 보고도 심연을 꿰뚫을 수 있는가 하면, 초음파로 아주 깊은 곳까지 투시를 해도 전혀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과학적 진실이란 “자료와 과학자의 편견 사이의 대화”라고 했다.
한의학에선 단번에 핵심을 관통하는 직관을 중시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눈빛에 신이 들어 있는가 아닌가이다. 신이라는 건 간단히 말하면 ‘생명에의 의지’다. 결국 병을 고치는 건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이다.

현대의학에선 맥박의 수를 재는 데서 그치지만 한의학에선 숫자가 중심이 아니다. 빠른가 느린가, 떠 있는가 가라앉았는가, 힘이 있는가 없는가, 활처럼 휘어져 있는가 아니면 줄을 튕길 때처럼 팽팽한가 등등 마치 한편의 음악을 감상할 때처럼 힘과 강도, 리듬과 멜로디를 다채롭게 읽어 낸다.

용감한 사람은 눈이 깊고 또렷하며, 눈썹이 길고 곧으며, 삼초의 무늬가 가로로 놓이고 마음이 단정하고 곧으며, 간이 크고 단단하고 담에는 담즙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성내면 기가 성하여 가슴이 벌어지고 간이 들려서 담이 가로놓이며, 내외자가 찢어지고 눈을 치뜨며, 털이 곤두서고 얼굴이 푸르게 됩니다. 이것이 용감한 사람이 되는 까닭입니다.

동의보감, 고미숙, 286-308쪽

Words

思 생각 사: 囟 정수리 신 + 心 마음 심.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함. (사상思想)
慮 생각할 려: 虎 범 호 + 思 생각 사.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날까 걱정한다. (사려思慮)
昨 어제 작: 날 일 + 乍 잠깐 사. 얼마전에 지나간 날. (작년昨年)
詐 속일 사: 言 말씀 언 + 乍 잠깐 사. 말을 지어 내다. (사기詐欺)


Journey and Journal

토요일인 어제昨는 시리와 독일역사박물관에서 주최하는 한나 아렌트 전시를 보러갔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간부였던 아이히만의 인터뷰를 통해 매우 잘 알려진 유대계 철학자이다.
풍부한 지성과 용기로 홀로코스트 외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찰을 통해 기여를 했지만 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찬양한 것은 당대 유대인이었던 그녀로써는 당연하다 싶지만 내 입장에서는 사실 거북했고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명성도 미국의 스타숭배문화가 일조한 것은 아닐까 싶다.
시리도 그녀의 여성인권에 대한 견해에 그다지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철학을 단편적으로 요약해 내린 결론 중 하나에 동감하는 부분은 ‘다수’, ‘무리’, ‘우리’가 아닌 ‘나’의 판단을 무엇인지 되묻고 소수의견 일지라도 ‘자신’의 판단을 따르라는 것.

직장 바로 윗 상사는 숫자에 기반한 결과에는 집착하지만 직원들을 다루는 능력은 부족하다. 이미 두번이나 홈오피스와 관련해 그의 처사가 미흡함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노력하는 기미가 보이기도 했지만 금새 다시 그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며 말을 지어내는건詐 아닌지 되묻게 되었다. 그냥 대충 작은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내 신분도 결국 노동자이다. 내가 위치한 전선에서 내 경계를 지키지 않으면 당장은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그 여파가 다른 직장동료들에게 확장될지 모른다는 판단과 함께, 사소할지 언정 소심함으로 자존감을 상하느니 최소한의 존중을 지키며 할 말을 하기로 해, 그에게 지적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큰 정책이 마련되 한순간 개개의 현장이 바뀌는게 아니라 개개의 현장에서 저항이 강할 때 큰 정책이라는 징후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밑바닥으로 부터 발산되는 힘의 저항을 구도로 잡을 때 ‘민중’이라는 익명의 공동체에 더 힘이 싫리는 것 아닌가 싶다.

이메일을 보내고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이 내가 지향하는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함思이자 삶의 태도이고 풍체인 것을 고집한다. 고미숙의 동의보감을 읽던 중 오늘 마지막으로 읽을 구절에서 용감한 사람이 되는 까닭에 대해 기백이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내 스스로 얼굴이 푸르게 되는지 볼 수는 없지만 꽤나 내게 들어 맞는 말 갖다.

최근 인종차별적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눈에 더 띄기 시작했다. 때문에 길거리에 나가면 무의식적으로 신경이 서게 된다. 그냥 무시하고 내 갈 길 가는게 더 현명하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의문, 유대인들의 저항이 강하지 않아 쉽게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된 것은 아닐까. 이를 사유해보면 베를린의 공공장소에서 몸을 내보이는 순간 나는 항상 동양인이라는 소수인종을 대표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도 항상 뻔뻔스럽게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큰 목소리를 냈던 이유도, 동양인의 소극적인 이미지를 깨고자 그랬음을 기억한다.

그러던 중 어제昨 의도치 않게 어떤 얼빠진 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는데 그가 칼을 빼들었다. 순간 겁이 났지만 아드레날린으로 금새 고양됨을 느꼈다. 자전거를 집어들고 되려 그를 위협했다. 경찰을 부르라는 내 소리에 그도 겁을 집어 먹었는지 얼마 안있어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냥 지나칠까 생각慮도 했지만 공공장소에서 칼을 빼드는 이를 마주치고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정의감에 결국 경찰을 불렀고, 그는 붙잡혔다. 서툰 독일어로 사건에 대해 모두 서술하고 나니 뿌듯했다.

뜻을 간직하면서 변화에 대처하고 멀리 내다보는 것이 사려思慮라 한다. 니체도 시장터의 똥파리들을 일일이 잡으려 하지 말고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하였다. 일상의 사사건건에 신경을 곤두 세우는 일이 사려라 할 수 없겠지만, 또 한편 자신의 일관된 태도와 행위를 지키고 내면화하는 것 또한 사려라 할 수 있지 않겠나? 2주간 휴가를 냈으니 고독 속으로 달아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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