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9. E3. J8. Wrong life cannot be lived rightly

Quote of the day

The trick is to keep in view, and to express, the fact that private property no longer belongs to one, in the sense that consumer goods have become potentially so abundant that no individual has the right to cling to the principle of their limitation; but that one must nevertheless have possessions, if one is not to sink into that dependence and need which serves the blind perpetuation of property relations. But the thesis of this paradox leads to destruction, a loveless disregard for things which necessarily turns against people too; and the antithesis, no sooner uttered, is an ideology for those wishing with a bad conscience to keep what they have. Wrong life cannot be lived rightly.

Minima Moralia, Theodor Adorno, p.39

Words

predicament – 어려운 상황, 확실한 것
vestige – 자취, 아주 조금
musty – 곰팡내 나는
pact – 계약
defunct – 없어져 버린, 죽은
decree – 법령, 명령
embalm – 향유를 발라서 보존하다, 길이 기억에 남기다, mummify, preserve
immanent – 내재하는
bibliophile – 애서가
executor – 집행인


Essay

지난 3일간, 긴 주말을 보내며, 한자의 책도 보지 않았다. 기사조차 읽지 않았다. 웹사이트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정신적 섭취보다는 집행인executor으로서의 생산에 더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지난 수 년간 작업해온 프로젝트들을 정리하여 한 곳에 모아 놓으니 많은 것들을 성취한 듯한 기분이어서 뿌듯하기도 하였지만, 더욱이 외관상으로 서로 달라보였던 프로젝트들 간에 연계성이 두곽되며 내 작품세계에 내재하는immanent 총체성이 보이며 마음이 안정되었다. 동시에 대다수 프로젝트들이 이제 초기 단계 밖에 아닌 것을 지각하며 앞으로의 작업과정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 가슴이 벅찼다.
그 총체성이란 무엇인가? 또한 무한한 가능성은 무엇인가? 차근차근 글을 써나가며 이해의 영역 안으로 매듭지어 나가야한다.

그러나 한동안 웹사이트에 매달리며 글도 쓰지 않았다. 나흘 만에 아도르노를 읽으며 소유와 관련하여 올바른 삶과 그릇된 삶은 어떤 것인지 고찰하게 된다. 내 삶은 올바른 삶이었던가? 지금 내 삶은 올바른 삶인가? 내 삶의 자취vestige와 방향을 점검하는데 글쓰기만한 것이 없겠다. 사실 그래서 블로그가 딸린 이 웹사이트를 얼른 마무리 시켜서 규칙적 글쓰기가 다른 형식의 창작과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싶었다.

오늘 아침 한겨례10000호에 실린 [김훈 기고]를 읽고 나니 지난 며칠 나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금요일 메이데이에는 2년 가까이 미뤄두었던 Study on Aged Footwear 사진 작업을 마무리 하는데 매몰되어 노동자 파업에 대한 고찰은 초저녁에 산책을 하며 잠깐뿐이 하지 않았다. 오늘 [김훈 기고]를 읽으며 지난 수요일 일어난 이천 물류센터 화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피동적 노동 역시 고임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동환경이 열악하지는 않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를 통해 세상이 다시 한번 낯설게 보인다. 여전히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계경제의 불평등한 계약pact 아래 열악하게 노동하며 죽어가는, 죽은defunct 사람들이 있다.
토요일 오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 법령decree 가운데 시작하게 된 ‘화상 김치 워크숍’을 두번째로 진행했다. 3명 밖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소금이 녹아내린 배추처럼 그들과의 관계도 말랑말랑 짭짤해지고, 코를 파고드는 마늘, 생강, 파처럼 정이 톡 쏘았다. 서로 격리된 각자의 공간에서 앞으로 풍길 향긋한 곰팡내musty를 맡으며 입에서 말 대신 맛으로 교감하게 되겠지. 이번 내가 담근 김치에는 배추와 함께 무우도 섞어 넣었다. 서로 다른 모양과 감촉이 한 접시에 담기니 먹는 경험이 더 풍부해 진다.
토요일 밤에는 뉴욕에서 자가격리 때문에 어려운 상황predicament에 놓인 친분 있는 형에게 보탬이 되고자 화상으로 해피아워를 가졌다. 이름 난 한 대학 정교수로 일하는 그 조차 내집마련에 애를 먹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세상이 낯설어 진다. 그가 욕망하는 앞으로의 그의 창작 여정에 대해서도 궁금해 진다. 얼른 논문집이 출판되어 읽어보고 싶다.
일요일 오후에는 두 시간여 시리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아저씨들의 동네축구도 관람하며 왠지 어색한 한가함으로 일상을 즐겼다.

노동환경이 개선되려면 소비자들의 올바른 소비가 중요할 테다. 아도르노가 쓰듯이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적절한 소비와 소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보아야 하겠다. 현재 내 소유물 중 내 삶을 망치는 것이 있는가? 다른 이들의 삶을 망치는 것이 있는가? 책 조차도 아마존에서 구입한다면 진정한 애서가bibliophile가 아니겠다. 최근 암으로 돌아가신 지인의 숟가락을 쓰며 내 끼니의 향유를 발라서embalm 그의 죽음을 내면화 하려한다. 최근 물려 받은 이 소小 유물은 죽음으로서 올바른 삶을 불러올 테다.


Journey and Journal

0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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